나는 고정된 형태로서의 자아보다, 타인 혹은 대상과 얽히며 변화하는 가변적 존재에 주목한다.

특히, 식물의 생태적 특성인 ‘기생’과 ‘공생’의 구조를 인간관계의 메타포로 삼아, 나와 타자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을 탐구한다. 회화에서 시작된 나의 시선은 나뭇가지, 바느질과 같은 유기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설치로 확장되며,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유대와 생명력을 시각화한다.

기생식물의 복잡한 이미지와 인체를 파편적으로 재구성하며, 화면에 등장하는 식물과 인체의 형상, 그리고 분홍 계열의 색감은 여성의 삶과 모성, 애착 관계 등 나의 삶 속에 투영된 다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나의 작업은 서로를 지탱하는 연약하지만 질긴 연결의 궤적을 쫓는 과정이다.

  • 작업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들은 나의 애착관계에서 시작된다. 애정하던 존재의 상실은 형체 없는 불안과 공허함을 남겼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감각의 출발점이 되었다. 성장 과정 속에서 겪었던 자의적, 타의적 상실의 경험은 애착과 결핍으로 응축된 모호한 어른으로 나를 자라게 만들었다. 타인에게 의탁하는 방식으로 나를 구체화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했다. 이 때의 관계들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지탱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정체성을 흡수하는 복합적인 상태로 존립했다.

     나는 이러한 관계의 양상을 기생식물의 생태에 빗대어 바라본다. 기생식물은 지지와 침투가 동시에 발생하는 모순적 생태를 지니고, 이는 나 자신을 투영한 시각적 장치로 작동한다. 작품에는 자연물과 신체를 연상시키는 유기적 형상이 등장한다. 이 형상들은 식물과 신체 사이를 오가며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 다육식물을 포함한 기생식물의 구조와 인체를 결합한 경계가 모호하고 복잡하게 얽힌 이미지를 화폭에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는 제작된다.

     독립된 주체로의 갈망과 비독립적 주체라는 자기혐오는 개인의 쓸모에 대한 고찰로도 연결이 되었다. 도시의 깨진 콘트리트 틈에서 자라난 잡초들을 기록하여 전시 공간에 흩뿌리는 연출을 하거나, 버려진 목재와 가지치기 후 쌓아둔 나뭇가지들을 활용하여 평면에서 화면 밖으로 뻗어가는 확장된 구현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버려진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임시적이고 거친 구조물은 공간에 의존하거나, 반대로 회화를 의존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침투하여 기생하는 관계적 상태를 부여받는다.

    이는 작품 개별의 서사에 집중하기보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공간에서 호흡하고 존립하는지 시각화하는 과정으로 남는다.

    신예지

    작가노트 2026

  • I focus on the fluid and transformative nature of existence—where the self is not a fixed entity but is constantly shaped through entanglements with others and the world.

    Using the ecological structures of 'parasitism' and 'symbiosis' found in plants as metaphors for human relationships, I explore the points where the boundaries between the self and the other begin to blur.

    My artistic vision, rooted in painting, expands into installations that incorporate organic materials such as tree branches and stitching to visualize invisible bonds and vitality. By fragmenting and reconstructing the complex imagery of parasitic plants alongside the human form, I present elements—botanical figures, the body, and shades of pink—that represent the multifaceted images of womanhood reflected in my life, encompassing themes of female experience, motherhood, and attachment.

    Ultimately, my work is a continuous process of tracing the trajectories of these connections—fragile, yet resilient—that sustain one another.

    Yeji Shin

    Artist Statement 2026

  • <MAPO LAYERS> 1:1 비평 매칭 - ≪Floating Roots: 유영하는 뿌리들의 궤적≫, WWWSPACE 1

    글: 채 은

    작가: 신예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선들이 길게 뻗어, 줄기처럼 갈라지고, 핏줄처럼 엮이며, 물처럼 흘러간다. 그 선들은 갈라진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듯 천천히 번져가고, 뿌리 깊은 나무에서 생겨나는 가지처럼 제각기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다. 막힌 공간을 비집고 올라온 생명의 결심처럼, 신예지의 화면은 한 점에 머물지 않는다.

    붉고 푸른 물감이 스며든 천 위에서 선들은 서로를 감싸거나 밀어낸다. 손끝으로 느껴질 만큼 거친 질감의 회화는 나무 목재 위에 얹혀 있다. 단단한 나무와 부드러운 천의 대비는 상반된 감각을 병치하면서도, 경계가 느슨해지고 — 서로가 모여 마치 새로운 생명을 품듯 확장된다. 회화와 함께 놓인 나뭇가지, 나무 판넬, 느슨하게 드리운 캔버스 천은 단순한 지지대가 아니다. 이들은 새로 태어나고 사라지는 회화 속 세계의 일부이다. 화면 속 흘러내리는 듯한 선들의 결과 함께 존재하는 붉은 형상은 인간의 근원적 이미지를 품고 있으며 이 형상은 단순한 인간 신체의 재현이 아닌 순환과 관계의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생명적 감각의 은유이다.

    신예지는 신체와 그 안에서 발생하는 관계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식물을 끌어들인다.

    식물이 생명을 지탱하고 양분을 나누고 흡수하는 방식을 관찰하며 그 안에서 개인과 집단, 자아와 타자가 얽힌 사회의 순환을 개인적 경험과 그 연결의 구조속에서 사유한다. 이러한 시선은 개인적 서사가 집단적 기억으로 퍼져나가는 순간을 포착한다.

    특히 작가가 여성으로서 경험한 관계의 형성과 돌봄, 희생과 숭고함은 식물의 끈질긴 생명력과 겹쳐진다. 신예지는 관계의 형성을 잇는 여성적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되, 그것을 보편적 정서로 확장하며 ‘몸의 기억’을 사회적 맥락 속에 배치한다. 이러한 사유는 단지 주제에 머물지 않고, 회화의 구조적 형식으로 이어진다.

    신예지의 회화는 일관성의 미학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주류와 주변을 오가는 시각 기호들이 빈번히 교차하며, 비정형적 요소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고정된 형식에 머물지 않는 화면은 동시대의 경계 허물기 — 개인의 내러티브를 공유하는 유동적 감각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신예지는 단순히 유동적인 감각만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녀의 회화는 생명의 순환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충돌,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인체의 근원적인 이미지와 식물의 생명력으로 포착하여 탈형식화와 혼종화의 흐름 속에서 유기적이면서도 단단한 생의 구조를 그려낸다.

    Family Tree(2025) 는 그 흐름을 더욱 확장하여, 몸의 기억과 경험을 공간화하려는 시도이다. 더불어 나무조각들과 캔버스 천이 얽혀 만든 구조는 단순한 설치가 아닌, 신체의 감각이 머무는 장소를 구축한다. 유동적인 형태와 색의 긴장, 재료의 질감과 특성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신예지의 회화는 고정되지 않은 개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풍경이자, 젠더· 세대·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층적으로 감지되는 동시대 감각의 리듬이다. 그 리듬 속에서 자신과 타자, 자연과 인간이 이어지는 관계망을 사유하며, 그것을 감각하는 주체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Floating Roots: 유영하는 뿌리들의 궤적≫은 이러한 흐름을 시각화한 동시에 현대 사회 속 몸과 감각이 연결되는 자리 — 관계망을 생성하려는 시도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감각과 공감의 회복을 제안한다.

    [참고]

    윤난지, 「 한국 현대 여성미술가들의 작업: 여성주체의 재현 」, MMCA 리서치랩 에세이. (게시일자 미등록)

  • 2024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GPS - <Laminar Flow: 정지된 단편>

    홍익대 예술학과 회화과 1:1 비평 매칭

    글: 김은진 

    작가: 신예지

    화면을 가득 채운 붉고 상처 난 신체들이 있다. 나무 합판 위에 그려진 여성의 육체에서 나무의 결은 피부의 질감이 되고 옹이는 상처가 되어, 그들의 몸을 취약하게 노출시킨다. 머리가 잘려 나간 육체들의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신예지는 건축 자재 중 하나로 사용되는 무늬목 합판을 작업의 재료로 사용한다. 작가에게 목재는 생명력과 죽음을 모두 은유할 수 있는 하나의 상징인데, 합판 표면에 새겨진 나이테는 시간의 흐름을 짐작게 하지만, 동시에 나이테는 나무를 잘라내어 그 단면을 펼쳐 놓았을 때만이 볼 수 있는 흔적이기 때문이다[1]. 이 삶과 죽음 사이의 무수한 상실들에 대한 사유는 합판을 도려내어 그 형태를 재조합하는 방법론으로 구현된다. 구멍 나고 삭제된 화면의 틈새 사이로, 얼기설기 자신의 형상을 그러모은 불완전한 존재의 모습이 그렇다.

    화면 속 여성의 신체는 사전 구상을 통해 표면으로 옮겨지기보다는 각기 다른 나무 합판의 결에 따라 가변적으로 그려진다. 이때 작업 전반에 사용된 붉은 색의 유채는 나무의 표면으로 흡수되어 이미지를 합판이라는 지지체에 온전히 접합시킨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에서 나무의 “테, 겹, 결”[2]은 여성의 신체라는 이미지만큼이나 화면의 전면으로 드러나는 물질적 토대가 된다. 나무의 결은 피부의 표피가 되고 옹이는 상처로 남아, 그들의 몸을 구성하는 것이다.

    일부를 도려내거나 다른 화면을 덧대는 과정을 통해 두께를 갖게 된 화면은 회화와 부조 사이 그 어디에 가 닿는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신예지는 바닥을 지지하여 자립해 있는 조각(적인 것)을 시도한다. 맞닿은 부분이 고정되지 않아 분리되어 재조합 될 수 있는 <주기>와 <나름의 규칙>이 그렇다. 이는 상실의 가변적인 양태를 형식적으로 구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무라는 소재 자체가 지닌 부피감을 극대화하며 신예지의 작업이 지닌 다양한 매체로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1] 작가인터뷰, 2024

    [2] 작가노트, 2023